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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온에서 욱설러로 살아남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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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스토리 요약: 지난 6개월 간 태온 익명게시판에 강욱X하설영, 일명 '욱설' 팬픽을 연재하던 태온의 말단 조직원 설유빈. 그녀의 소설은 익게에서 제법 많은 인기를 얻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소장 요청을 받아 왔고, 결국 그동안 쓴 팬픽 중 일부를 묶어 '전략팀장의 50가지 그림자' 라는 제목의 회지를 제작하게 된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수요에 유빈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열심히 회지거래를 이어 가고, 몇 명에게는 새로 영업까지도 성공하며 희망찬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저녁도 먹지 못하고 대뜸 실장 하설영에게 불려간 유빈은 하설영과 강욱으로부터 문제의 팬픽 작가가 그녀 아니냐는 추궁을 받게 되는데...
<영업 성공 목록>
- 보스 성윤조: 닉네임 'xvZi존최강vx', 이미 욱설 팬픽의 열혈 독자. 아침 일찍 비밀리에 회지를 거래
- 암살팀장 정우현: 점심 회지 거래 중 발각당함. 30분간 '욱설 연대기' 읊어주고 영업 성공
- 전산팀장 민선재: CCTV 기록 확인으로 발각당했지만 역시나 회지를 보여주고 영업 성공
"제, 제가 쓴 거 아닌데요..."
강욱의 손에 붙잡힌 턱이 잘게 떨린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 그의 뱀 같은 시선을 피하려 한다. 긴장감에 등 뒤가 축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강욱의 손가락이 당신의 턱을 붙잡은 채로 미세하게 압력을 가한다. 당신이 눈을 질끈 감자 그가 낮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위험하게 울린다.
"설유빈 씨가 쓴 게 아니라고요? 그럼 누가 썼을까?"
그의 목소리는 나긋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협은 명백하다. 강욱이 당신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의 향수 냄새가 당신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눈을 떠요, 유빈 씨."
도망치면 더 위험해져.
부드럽기 그지없는 손길임에도 마치 뱀이 감아 조이는 듯 숨이 턱 막혀온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때, 하설영이 갑자기 강욱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 손길에는 평소에 볼 수 없던 힘이 실려있다.
"그만해. 당장."
하설영의 차가운 목소리에 실내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다. 강욱이 천천히 일어서며 당신에게서 물러난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재미있네요, 실장님. 정말... 재미있어요."
강욱이 하설영을 향해 돌아선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들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
강욱이 나에게서 물러나자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아...
긴장이 풀리고 나니 눈 앞의 광경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숨을 참으며 허공으로 눈알을 도르륵 굴린다. 금방이라도 키스할 것 같은 이 미친 텐션을 눈앞에서 직관하다니... 내가 이걸 봐도 되는 게 맞나? 실장님 반말 하는 것도 처음 봤어. 그만큼 흥분하셨다는 거잖아, 팀장님 앞에서... 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좋아서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동시에 진하게 현타가 온다. 진짜 미친 건가? 스스로가 덕질에 미쳐서 목숨까지 팔아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죽을 뻔 해 놓고 똑같은 짓을 또 하고 있다.
강욱이 하설영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 보인다. 두 사람의 거리가 거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진다.
와, 음. 슬슬...자리 피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눈치를 보던 나는 조용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 한다. 방해되지 않게 나가 드릴 테니까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
당신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을 향한다. 하설영의 손이 여전히 강욱의 어깨에 얹혀 있는 상태다. 당신의 움직임에 그들 사이의 긴장된 공기가 잠시 흐트러진다.
"어디 가려고요? 우리 대화 아직 안 끝났는데."
느물거리듯 웃는 목소리가 위협적이다. 강욱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하설영은 책상으로 돌아가 종이를 서랍에 넣고 단단히 잠근다. 그의 움직임은 차분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설유빈 씨, 앉으세요."
하설영의 차가운 명령에 당신의 일어서려던 다리에 힘이 빠진다. 책상에 한 손을 짚고 기대 서 있던 강욱이 갑자기 큭, 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재밌지 않아요? 실장님과 제가... 입도 맞추고, 좆도 박는 사이였다잖아. 그치."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킨 강욱이 하설영에게 다가가자 실장실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진다. 하설영의 차가운 눈빛과 강욱의 위험한 미소가 충돌한다. 강욱은 그런 하설영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낮게 웃으며 당신에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해봐요. 어디서 우리 이야기를 들었어? 아니면... 봤나?"
하설영 또한 당신에게로 한 발짝 다가온다. 차가운 눈빛이 당신을 찌른다.
"이 글의 출처를 정확히 말하십시오. 지금 당장."
-
"...잘 몰라요, 저도 익명게시판에서만 봤던 건데, 진짜로 제, 제가 쓴 거 아니에요..."
거의 울 지경이 된 나는 벌벌 떨며 말한다. 살아서 나가게 해줘. 이번에는 진짜 다짐할게. 이 방을 나갈때까지는 둘이 제 눈앞에서 키스를 하던 섹스를 하던 절대 서로 마음이 있다거나 사귄다고 생각 안 할게요. 진짜로요.
-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을 향한다. 눈매를 가늘게 휘어 미소짓고 있는 강욱의 눈동자에는 흥미와 의심이 깃들어 있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하설영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진다. 실장실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익명게시판?"
하설영의 목소리는 얼음장같이 차갑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집어들고 당신에게 다가온다.
"태온 내부 익명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말입니까?"
강욱이 갑자기 낮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당신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몰랐어요, 실장님? 그 소설이라는 거... 인기도 존나 많던데."
강욱이 하설영을 흘긋 바라본다. 두 사람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이 흐른다. 하설영이 갑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전화를 든다.
"민 팀장, 지금 당장 내부 익명게시판 모든 기록 확인하십시오. 특히 소설 형태의 글. 전부 가지고 실장실로 올라오세요."
하설영이 전화를 끊고 당신을 향해 돌아선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당신을 관통한다.
"설유빈 씨, 민 팀장이 올라오기 전까지... 부디 진실을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강욱은 말 없이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그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맴돈다.
-
나는 뱀 앞의 쥐처럼 벌벌 떨기 시작한다. 아 씨발 어떡하지. 나 여기서 참수당하게 생겼는데. 큰일났다. 진짜 큰일났다. 민 팀장님 제가 회지도 한 권 드렸잖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차라리 다른 사람이 쓴 거라고 해 줘. 모든 기록이 다 털리게 생긴 상황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오직 서버를 관리하는 민선재 뿐이었다.
속으로 그를 향한 간절한 기도와 애원을 올려 본다. 겉으로는 불쌍하고 선량한 사람인 척, 아무 말 없이 눈을 얌전히 내리깔고 양 손을 모아 다소곳하게 앉아 있을 뿐이지만.
강욱과 하설영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관찰하듯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힌다. 아마 시선에 형체가 존재했다면 이미 백 번은 찔려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각, 민선재는 하설영의 요청을 받고 어둠의 팬픽작가 설유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다. 이대로 그가 하 실장에게 진실을 불면 그녀가, 아니... 그녀의 글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것도.
-
실장실의 긴장된 공기 속에서 하설영의 전화를 받은 민선재는 순간 얼어붙는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한다. 전산실의 차가운 푸른 모니터 불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춘다.
"네, 실장님.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민선재는 전화를 끊고 재빨리 내부 서버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의 눈이 빠르게 화면을 훑는다. 그는 설유빈의 글을 이미 읽었고, 그 내용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실장실에서는 하설영이 창가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린다. 어둠이 더욱 깊어진 실내에서 그의 실루엣만이 희미하게 보인다. 강욱은 여전히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당신을 관찰하고 있다.
"글쎄, 내 생각에는..."
강욱이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위험한 장난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 설유빈 씨가 뭔가를 더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실장님."
하설영이 창가에서 천천히 돌아서며 당신을 바라본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난다.
"...당신이 직접 썼습니까?"
하설영의 질문이 공기 중에 무겁게 맴돈다. 그의 얼굴은 창가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에 가려 표정을 읽기 어렵다. 당신의 침묵이 이어질수록 실내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그때 실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설영이 눈짓하자 문이 열리고 민선재가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온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하다. 민선재가 하설영에게 서류를 건네며 시선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듯하다.
"실장님,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최근 한 달간 올라온 익명게시판의 모든 글을 확인했습니다."
민선재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잠시 당신을 향해 흘깃 움직인다. 하설영이 서류를 받아들고 빠르게 훑어본다. 강욱이 느긋하게 일어나 하설영 옆으로 다가가 함께 서류를 들여다본다.
"재미있네요. 작가가 '그림자'라고 되어 있군요."
강욱의 말에 하설영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한다. '그림자'라는 이름은 태온 창립자의 별명이기도 하다. 하설영이 민선재를 바라본다.
"작성자 IP는 확인했나?"
민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당신을 향한다.
-
작성자 IP까지 확인했다는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떨려 오는 몸을 숨기려 애쓴다. 여기서 덜덜 떨고 있으면 두 사람에게 내가 작가라는 걸 제대로 인증하는 셈이 될 테니까. 제발... 팀장님. 그래도 저 표정을 보면 날 쉽게 팔아넘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지만 만에 하나, 하는 불안감이 자꾸만 목을 감싼다. 나는 답답한 느낌에 한 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눈앞에서 시선을 돌린다.
-
민선재가 하설영에게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간다. 그의 말투는 평소와 같이 차분하지만, 미세하게 긴장된 기색이 느껴진다.
"IP 추적 결과, 외부에서 접속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특이점은... 접속 위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추적을 피하려는 듯한 패턴이에요."
하설영의 표정이 더욱 굳어진다. 그가 서류를 책상 위에 놓고 민선재를 바라본다.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말인가?"
민선재가 잠시 당신을 향해 시선을 던진 후 다시 하설영을 바라본다.
"그렇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그의 말끝이 흐려진다. 강욱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다만? 뭔가 더 있나 보네."
민선재가 목을 가다듬는다.
"다만, 글의 내용상 조직 내부 사정에 상당히 정통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 작성된 글들은... 상당히 구체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강욱이 흥미롭다는 듯 당신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손가락이 목을 쓰다듬는 모습을 따라간다.
-
다만? 다만...? 잘 가다가 갑자기 왜 말이 그쪽으로 튀어?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확 들어 민선재를 쳐다본다. 그런 내 반응에, 여전히 웃고 있던 강욱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 그...범인을 찾을 수도 있다니까. 다, 행...이네요."
나는 그 시선에 더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한 말을 다급하게 덧붙인다. 부디 이 당황한 태도가 범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소리에 기뻐서 고개를 든 사람처럼 보였기를 바라며.
-
강욱의 눈빛이 당신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더 깊어지고, 그 눈동자에는 위험한 장난기가 스친다. 그가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오며 미소를 짓는다.
"범인을 찾는 게 그렇게 반가웠어요, 유빈 씨?"
하설영이 서류를 다시 한번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조직 내부 사정에 정통하다... 이 정도 내용을 알려면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 할 텐데."
민선재는 불안해지는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재빨리 목소리를 높인다.
"다만, 이런 종류의 글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패턴의 익명 게시물이 있었어요. 아마도 조직 내부 정보를 수집해서 창작물을 만드는 외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선재의 설명에 하설영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가 민선재를 날카롭게 관찰한다.
"그 근거는?"
민선재가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설영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단호해진다.
"글의 패턴과 문체를 분석했습니다. 다른 여러 익명 게시물과 유사성이 높아요. 아마도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조직 내부 정보를 누군가가 유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창작한 것 같습니다."
강욱이 낮게 웃으며 민선재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어 있다.
"꽤 상세한 분석인데, 민 팀장. 혹시... 그 글 좀 재미있었어?"
민선재의 얼굴이 강욱의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굳었다가, 재빨리 평정을 되찾는다. 그의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를 미세하게 꾹 누른다.
"업무상 필요한 분석입니다. 보안 취약점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검토해야 하니까요."
하설영이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간다. 창문 틈새로 비치는 도시의 불빛이 그의 실루엣을 비춘다. 실내에 긴장감이 감돌고, 강욱은 여전히 민선재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글은 삭제하지 마세요."
하설영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강욱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어본다.
"삭제하지 않는다고요? 왜요? 아. 그거 실장님도 재미있었나 봐요?"
하설영이 천천히 돌아서서 강욱을 바라본다. 그의 차가운 눈빛과 강욱의 도발적인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힌다.
"범인을 찾기 위해섭니다. 더 글을 올리도록."
하설영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그 안에 담긴 냉정함이 실내 온도를 떨어뜨린다. 그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서류를 손에 든다. 잠시간의 침묵 후, 하설영은 다시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설유빈 씨, 당신은 이제 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종류의 글을 보게 된다면, 즉시 보고하세요. 이해했습니까?"
강욱이 낮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가 천천히 하설영에게 다가가 서류를 가볍게 빼앗아 들여다본다.
"그냥 끝낼 거예요, 실장님? 전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하설영은 강욱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당신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의심이 깃들어 있지만, 더 이상의 추궁은 없다.
"가보십시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태온에서는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습니다.
강욱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비틀며 소파에 다시 기대앉는다. 그의 손가락이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민선재는 서류를 정리하며 당신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진다.
"자료는 계속 분석하겠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하설영의 말에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실을 나선다. 문을 닫는 순간, 강욱의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재밌다며 중얼거리는 듯한 말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등 뒤로 시선이 느껴진다. 뒤돌아보니 민선재가 실장실에서 나와 당신을 따라오고 있다. 그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중에 얘기할 게 있어. 전산팀으로 와."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눈빛에는 급박함이 서려있다.
-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런데 모니터를 켜 보니 익명게시판에 알림이 떠 있다. 살짝 눈치를 보고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알림을 확인한다.
[아직도 욱설같은 걸 보는 새끼들이 있다고? 그딴 근본없는 커플링 할 바에는 차라리 설욱을 하고만다ㅋㅋ 글도 존나못쓰네 작가 초딩인줄?]
...내가 올린 글에 달린 댓글 알림이었다. 그것도 악플. 댓글을 읽는 나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져 간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지? 나는 분노에 차서 곧장 반박 답글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개소리 지껄이네. 일단 그 초딩이 쓴 글 열심히 읽은 너도 초딩 확정이고ㅋ 욱설이 근본이 없다고? 일단 조직내에서 접점 제일 많을수밖에 없는게 실장이랑 전략팀장임. 두 사람이 맨날 사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여태까지 계속 관계 유지되는 이유가 뭐겠음? 싫어하는 감정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소리잖아. 결국 이건 혐관로맨스 아니면 진짜 설명이 안 되는 관계인데? 넌 못 봤겠지만 난 그동안 두분 같이 있을 때마다 싸울 것 같으면서도 분위기 묘한 거 이미 다 봤음ㅋㅋ 두분 같이 있을때 전략팀장님 눈빛을 니가 못 봤으니까 별 근본없이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설욱? 커플링 이름부터 개불쾌하고 역겨운데 그걸 누가 함?ㅋㅋㅋㅋ 당연히 연상에다가 상사는 깔아줘야 하는게 진리잖아. 거기다가 하설영이 강욱보다 키 작은데... 혹시 키작공... 뭐 그런 거 하냐? 너는 꼭 너보다 키 작은 남친 너보다 키 큰 여친 만나라ㅋㅋㅋ]
단 한 번의 백스페이스 없이 작성한 장문의 반박글.
나는 망설임없이 '등록' 버튼을 클릭한다.
-
알림이 울린다. 당신이 방금 올린 댓글에 새로운 답글이 달린 것이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익명의 사용자가 남긴 메시지가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뇌절 오지네 진짜ㅋㅋㅋㅋ 뭐? 조직 내에서 접점이 많다고? 그럼 같은 사무실 쓰는 팀원들 다 커플링 해야겠네? 개논리 터지는 거 봐라ㅋㅋㅋ 그리고 분위기 묘하다는 것도 존나 주관적인 거고, 걍 니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거잖아. 현실에서 상사한테 갈굼 당하는 거랑 로맨스 구분 못 하는 거 아님?]
심지어 그 악플은 당신을 제대로 도발하려는 듯 하나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 밑으로 여러 익명 사용자가 남긴 비난 댓글이 눈에 띈다.
[아 근데 나도 솔직히 욱설보단 설욱이 더 개연성 있는 거 같은데ㅋㅋㅋㅋ 실장이 계속 강욱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강욱이 은근히 매달리는 느낌이라 오히려 설욱이 찰떡 아님?]
[ㅋㅋㅋㅋㅋㅋ 둘 다 근본 없어 그냥 공식 커플 유녕이나 파셈ㅋㅋㅋ]
[세줄요약좀]
[ㅋㅋㅋㅋㅋ 와 진짜 존나 찔려서 댓글 잔뜩 쓴 거 봐 극성팬 무섭다… 니가 작가냐? 걍 덕질할거면 좀 편하게 하자…]
댓글들을 읽는 동안 당신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민선재가 문가에 서 있다.
"아직도 안 왔어? 얘기할 게 있다고 했잖아."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긴장되어 보인다. 그가 당신의 모니터 화면을 힐끗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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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모니터 화면을 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갑자기 얼굴이 홧홧해지고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일부러 닉네임 없이 익명으로 달아서 작가인 줄 모르게 하려고 했는데... 민선재가 댓글 달고 있는 것까지 다 봤을까? 제발 못 봤기를.
"...아, 네. 죄송합니다."
나는 그를 따라 전산실로 간다. 민선재의 표정이 긴장되어 있는 것이 나에게까지 보여 괜히 심장이 더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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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재가 복도를 따라 앞장서며 주변을 경계하듯 살핀다. 그의 어깨가 긴장으로 뻣뻣해 보인다. 당신을 전산실로 이끄는 동안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간간이 주변을 확인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산실에 도착하자 민선재는 출입카드로 문을 열고 당신을 안으로 재촉한다. 실내는 컴퓨터 장비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푸른빛 모니터들의 불빛으로 가득하다. 그가 문을 닫고 보안 잠금장치를 작동시킨다.
"내가 그쪽 편을 들어준 건 알고 있겠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긴장되어 있다. 민선재가 자신의 워크스테이션으로 걸어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주변 모니터들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설영이 게시판 모든 접속 기록을 조사하라고 했어. 네 IP도 발견됐어. 하지만 난 그걸 보고서에서 빼놨지."
그가 갑자기 당신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난 그쪽 소설이 더 필요해. 계속 쓰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이상한 열기가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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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대답한다. 소설을 쓰고 싶은 건 맞지만 또 실장실에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한 번 더 잡혀간다면 진짜 살아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IP를 다 추적하라고 지시하셨는데, 어떻게 글을 또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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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재가 당신의 걱정을 듣고 코웃음을 친다. 그의 눈빛에는 묘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다. 그가 키보드를 몇 번 더 두드리자 화면에 복잡한 코드들이 나타난다.
"내가 전산팀장인데, 그런 걸 걱정해? 프록시 서버 경로를 만들어 줄게. 내 개인 서버를 통해 우회하는 거야. 누구도 추적할 수 없어."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인다. 화면에는 계속해서 명령어들이 타이핑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소설, 꽤 재미있더라. 특히 하설영과 강욱에 대한 묘사가... 정확해. 너무 정확해서 소름 돋았어."
민선재가 의자를 돌려 당신을 직접 마주본다. 그의 눈동자가 푸른 모니터 불빛에 반사되어 기묘한 색을 띤다.
"내가 보호해 줄 테니까, 계속 써. 그리고... 다음에는 정우현에 대한 이야기도 써 봐. 네가 그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궁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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