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속도로 충돌해 결국 둘 다 산산조각 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런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네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 난 널 죽일 거야. 그리고 나도 죽을 거고. 이게 사랑이라면... 이게 내가 아는 사랑이야."
* 플레이 로그를 흐름에 맞게 일부 수정하여 담았습니다.
* AI가 출력하는 문장은 똑같은 표현이 너무 많더군요... 전체 흐름은 그대로이지만 서태주 부분에서도 제가 임의로 표현을 수정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상 로그를 기반으로 새로 쓰다시피 한 글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 이전편: https://planetloop.tistory.com/27
낙하, 종단속도 (3)
나는 몸을 돌려 그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푸른 바다 위로 햇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그 순간 파도 소리도 기러기 소리도 아득히 멀어진다. 오직 고요한 숨소리만이 우리 사이의 작은 공간을 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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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냐고. 그렇게 묻는 서태주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지해서, 얼핏 화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숨을 멈춘다.
결국 반 박자 늦게 튀어나온 것은 맥 빠질 만큼 시시한 핑계.
"...날씨가요."
하늘도 파랗고, 햇빛도 좋고... 나는 애매하게 하늘만 쳐다보며 말끝을 흐린다. 싸늘한 겨울 공기 위로 적막이 불편하게 얹힌다. 가만히 있자니 속이 울렁이는 듯해 담배라도 입에 물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 봐도 손 닿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은 채 끙, 하는 소리를 낸다. 답답하네.
서태주는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반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랫입술을 검지로 느릿하게 쓸고 있겠지.
서태주가 워낙에 다혈질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는 정말이지 사람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편이다. 특히 눈앞의 인간이 제게 숨기고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서는. 불행하게도 그에게 자백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았던 나는 기어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바람도 적당하고요."
대신 정면을 향해 태연한 척 한 마디를 덧붙일 뿐. 그러나 뱉은 말이 민망하게, 말이 끝나자마자 약하게 불던 바람까지 뚝 멈춰 버린다. 문득 목덜미에 와 닿는 공기가 차서 나는 몸을 부르르 떤다.
서태주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낡은 그네를 발로 살짝 밀며 그의 눈치를 살핀다. 조금이라도 답답하거나 거슬리는 게 있으면 거침없이 굴던 서태주가 이렇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니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정적 속에 그네 삐걱이는 소리만 들리기를 한참.
담배 한 대는 진작 피우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서태주는 딱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래, 날씨 좋네.
그리 말하며 그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꺼내 문다. 하얀 담배꽁초를 입술로 살짝 문 서태주는 앞니로 그것을 잘근잘근 씹는다. 꼭 그 연초가 아까 먹었던 달콤한 과자라도 되는 양.
때마침 다시 불어온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트린다. 겨울 햇살을 머금은 머리칼이 평소보다 더 맑은 갈색으로 비친다. 찬 공기를 오래 맞은 뺨은 약간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평소의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칙칙하기 그지없는 모래놀이터와는 대조되는 따스한 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그러나 이 무심한 듯 꾹 눌러담은 평화로움이 실상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를 알기에,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만 할 뿐 속이 찔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는다. 날씨가 좋다고? 씨발... 변명도 정도가 있지. 저렇게 어설프게 변명하는 걸 보니 화가 나기는커녕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짜증도 난다.
너는 왜 그렇게 도망치려고만 하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래. 날씨 좋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중얼거린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는다. 담배를 찾는 듯 불안하게 주머니를 뒤적이는 손짓이 어쩐지 신경쓰인다. 저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며 답답해하는 모습까지 보고 있자니 그냥 내 담배를 건네줄까 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그네에서 일어난다.
녹슨 그넷줄이 절그럭거리며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그녀의 시선이 순간 나를 향한다.
"...이리 와봐."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들지만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녀의 앞에 서서, 천천히 손을 내민다. 잡아. 내밀어진 손바닥 앞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잡아보라고. 날씨도 좋다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시린 겨울 햇살이 쏟아진다. 그녀의 장밋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순간 모든 게 멈춘 것 같다. 마치 햇살 아래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그녀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손끝이 닿는 순간, 나는 그대로 그녀를 잡아당긴다.
그녀가 그대로 내 품에 안긴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녀가 작게 숨을 들이킨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감싼다. 가늘어서 한 손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 허리.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목덜미가 하얗다. 고개를 숙여 저기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참는다.
아직은... 아직은 안 돼.
"도망치지 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품 안의 몸이 순간 굳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도망치려고 했구나, 또. 나는 그런 그녀를 붙잡듯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녀의 체온이 전해진다. 그 온기가 좋아서, 더는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이제 못 놓아주니까."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린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는 제법 혼란스럽고 떠들썩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그녀의 심장 소리와, 내 심장 소리만이. 서로의 맥박이 뒤엉켜 울린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순간 숨을 멈춘다. 그의 체온이 뜨겁게 전해져 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상하다. 그와 있으면 편안한 게 아니었나. 그의 품에서 나는 짙은 담배 냄새가, 향수 냄새 대신 느껴지는 체향이 아찔할 만큼 머리를 어지럽힌다.
"...왜요? 왜 저를..."
아직도 좋아하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밀어내고 싶다가도 이대로 그의 품 안에 계속 안겨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지만.
-
그녀의 심장 소리가 빠르게 울린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는다. 익숙하게 맡아 오던 향수 냄새 대신 은은한 샴푸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상하게도 그 행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가 이렇게 내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 그녀의 심장이 내 심장과 같은 속도로 뛰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녀의 체온이 뜨겁게 전해져 온다.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
"...편하다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낮아진다. 그녀의 귓가에 대고 어제 술집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속삭이듯 돌려 준다. 아무리 편하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 편하지 않을 텐데. 그녀의 떨리는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는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장밋빛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지금 이렇게 신경쓰고 있으면서."
응? 나는 몸을 더 가까이 붙이며 나지막히 말한다. 입술이 그녀의 귓바퀴에 스칠 듯 말 듯 움직인다.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오며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크게 흔들리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순 없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잡는다.
"세상이 끝나든 말든... 넌 이제 내 거야."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더 힘을 준다.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그녀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심장 소리가, 체온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
"...시, 간을 좀 줘요."
그의 코끝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느낌에 파르르 떤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시간? 닷새 뒤면 세상이 망하게 생겼는데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시간이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비겁하게 또 한 발짝 도망가고 만다.
이대로 버티고 있는 손을 놓았다가는, 서로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단속도로 충돌해 결국 둘 다 산산조각 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런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다.
-
시간이라... 씨발,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지 않은 채 낮게 웃는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시간을 달라고... 세상이 끝나가는데 무슨 시간을 더 달라는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다워서 더 마음이 간다.
"...그래. 시간, 줄게."
그녀의 목덜미에서 고개를 들어 천천히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자 마치 독을 품은 것처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온다.
"근데 그날 밤에... 네가 그랬잖아."
세상이 망하기 전에 날 사랑해 달라고.
잘게 떨리던 그녀의 몸이 순간 굳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더 힘을 준다.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내 심장인지, 그녀의 심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졌거든."
이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 네가 날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졌어.
나는 천천히 그녀의 귓바퀴를 입술로 스친다. 일부러 예민한 귓불을 살짝 물었다 놓자 그녀가 파르르 떤다. 그 떨림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시간을 달라고? 도대체 너를 어디까지 기다리고, 참아 줘야 하는지. 그럼에도 또 한번 더 용인하고 마는 것은 내가 그녀에게 품은 것이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시간, 많이는 못 줘. 도망갈 시간 따위는 안 줄 거니까."
-
"읏..."
그가 귓불을 물자 온 몸이 파드득 떨린다. 참으려던 신음이 한숨처럼 흘러나온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감싼 손이 더욱 강하게 조여 온다. 신경 하나하나가 날것처럼 예민해져, 몸이 맞닿은 곳마다 전기가 닿는 듯하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짜릿한 감각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서태주는 그대로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맨살에 스미는 숨이 뜨거워 나는 또 한차례 몸을 움츠린다.
그 순간 나는 불현듯 우리의 지난 밤들을 떠올리고 만다. 처음에는 내가 거절했고, 그 다음에는 그가 거절했던 밤들. 눈이 마주친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거칠게 끌어당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남아 있던 것이 툭 끊어진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감각을 무시하고 그의 옷깃을 쥔 손에 더 힘을 준다.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흐트러진 호흡이 얽히다 이내 하나로 합쳐진다.
[현재 시간: 12월 27일 오후 1시 35분]
[D-4 10:25:00 until impact]
놀이터에서, 대낮부터... 민망함에 나는 그의 가슴팍에 열이 오른 얼굴을 파묻는다. 열기가 식고 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멸망하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더니 이제는 나까지 돌아 버린 게 분명했다.
아직도 가쁜 숨이 진정되지 않아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부서진다. 땀에 젖어 다소 미끈거리는 맨살에서는 담배 냄새보다 서태주 본연의 체향이 더 강하게 났다.
나는 잠시 뺨을 기댄 채로 그의 심장 소리를 느끼다 조용히 묻는다.
"사랑 같은 건 모른다면서요."
-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놀이터의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를 스친다. 나는 그녀가 춥지 않게 허리를 더 단단히 붙잡아 끌어당기고,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를 켜자 불꽃이 일렁인다.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른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낮게 중얼거린다.
"...사랑이라... 그래, 그런 거 모르지. 하지만 네가 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건 알아."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걸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랑이라... 그런 걸 할 줄 알았다면 진작 내 동생을 버리는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 여자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난다.
"네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 난 널 죽일 거야. 그리고 나도 죽을 거고."
"..."
"이게 사랑이라면... 이게 내가 아는 사랑이야."
그녀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쥐며 이마를 맞댄다. 그녀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는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핥으며 속삭인다. 흠칫 떠는 그녀의 안에서 내 것이 다시 단단해지는 게 느껴진다. 나는 살짝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꾹 움켜쥔다.
"...한 번 더 할까?"
-
"...여기서 또 하면 저 진짜 못 걸어요. 업고 다니실 거예요?"
괜히 장난식으로, 투덜거리듯 말한 나는 그 말을 뱉고 약간 후회한다. 왠지 그는 내가 못 걸어다닌다고 하면 더 좋아할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압박감이 더 강해진다. 진짜로?
"아, 우, 움직이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한다. 솔직히 진짜 힘들어서 더는 못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 허리를 꽉 잡고 놔 주지 않는다. 오도 가도 못 하고 안절부절하던 나는 어떻게 해야 그를 떼어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다 입을 연다.
"...멋대로 더 하는 남자는 싫어요."
-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멋대로 더 하는 남자는 싫다고? 제법 귀여운 거절에 나는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낮게 속삭인다.
"...누가 싫어한다고 그래?"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나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움직인다.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킨 채 인상을 쓴 그녀의 잇새로 탄식 비슷한 것이 새어 나온다. 씨발... 진짜 미치겠네. 그저 육체적인 쾌감보다도 그녀의 이런 반응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미치도록 좋았다.
"난... 사실 네가 걷지도 못하게 만들고 싶어."
"...!"
"그래야 도망도 못 가고... 영원히 내 곁에 있을 테니까."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꾹 내리누르자 놀란 듯한 신음이 짧게 터져 나온다. 가슴께로 와 닿는 숨결의 간격이 다시금 짧아진다. 들썩이는 몸짓에 살을 맞댄 곳에서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던 것이 떨어졌다 도로 붙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정말로 지친 건지, 그녀는 완전히 내 몸에 체중을 싣고 늘어지듯 기대 버린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본 나는 마음이 바뀌어 움직임을 멈춘다.
아주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가던 허릿짓이 별안간 뚝 멈추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놓아준다. 그녀의 피부에 남은 내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것을 가볍게 쓸어내린 나는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는다.
"...근데, 지금은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게 더 싫어."
나는 얼떨떨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부드럽게 들어올려준다.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인다. 나는 비틀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주며 옷을 정리해준다. 그녀의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그 자국들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본다. 그것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다시 바지를 올려 입은 나는 그녀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것까지 돕는다. 땀에 젖고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손가락으로 빗어넘겨 주다 보니 붉게 부어오른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말랑한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누른다. 그녀는 무슨 뜻이냐는 듯 살짝 인상을 쓰고 올려다보면서도 내 손길을 밀어내진 않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 봐, 이렇게 얌전하게 굴 거면서...
"싫긴 뭐가 싫다는 건지."
[현재 시간: 12월 27일 오후 5시 30분]
[D-4 06:30:00 until impact]
부서진 파편과 시체로 가득한 거리는 겨우 이틀 만에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나는 가로등 아래 쓰러진 시체를 발로 밀어 엎은 뒤 그놈의 겉옷 안주머니를 뒤적인다. ...젠장, 또 허탕이네.
"어떻게 담배 피는 놈이 하나도 없냐."
혀를 쯧 차며 투덜거리는 나를 지켜보던 서태주가 뒤에서 큭큭대고 웃는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째려본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보란듯이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 쭉 빨아들인다. 도발하듯 나를 응시하는 눈매가 짓궂게 휘어져 있는 것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씨, 담배 말려...
세상이 망한 통에 가게나 편의점 따위가 멀쩡하게 문을 열고 있을 리도 없고, 문 닫은 곳이 멀쩡하게 남아 있을 리도 없다. 젠장, 담배가 떨어질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근처 가게는 이미 싹 털린 것인지 눈 씻고 찾아봐도 담배꽁초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참다 못해 그에게 담배 한 대 달라고 했더니 뭐라고 했더라. 사랑한다고 말하면 주겠다고?
애새끼도 아니고, 처음도 아니면서 섹스 한 번에 사랑이라는 게 뿅 생기는 줄 아나. 그런 얄량한 협박 따위에 내가 굴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기가 생긴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서 그를 노려본다. 그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 빤히 내려다보던 그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한번 쓱 빨아들이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
멀리서 들려오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해 질 녘의 어스름한 하늘을 가르고 지나간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시체들을 뒤지는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어 보여 웃음이 났다. 왜 맨날 쉬운 길을 제시해 줘도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나는 한 모금 더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입안에 가득 머금은 채 그녀에게 다가간다. 나를 향하는 매서운 눈빛이 마음에 든다. 늘 냉하게 굴던 여자라 그런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는 걸, 너는 알고 있을까.
나는 그녀 앞에 서서 하얗고 작은 턱을 잡아 올린다. 낮에 그렇게 매달려서 울 때는 언제고, 도로 옷을 입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구는게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위협적으로 노려보지만 역시나 그녀는 피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입 안 가득 담배 연기를 머금은 채로 그녀의 입술 가까이 다가간다. 그녀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 가까이 다가가 연기를 불어넣는다. 벌어진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것마저 전부 삼켜 버리고 더 깊게 혀를 얽는다. 그녀의 입술이 떨린다. 하얀 연기가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이러는 거, 나한테는 도발로밖에 안 보이는데."
키스를 마치고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인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아까 놀이터에서 남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그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본다. 숨을 고르던 그녀가 움찔거린다. 이번에는 몸을 더 당겨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낮게 웃는다.
씨발... 반항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데 어떻게 놔주냐.
"그러니까 말해. 날 사랑한다고. 그러면 담배도 주고... 더 좋은 것도 해줄게. 아니면... 계속 냄새나는 시체나 뒤지고 다니던가."
-
그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꺾으며 인상을 쓴다. 나는 입술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벅벅 닦아내고 그를 쏘아본다. 씨발, 그깟 담배가 뭐라고.
해도 다 져 가는데 시체나 뒤지고 있는 꼴이 자존심 상하기도 했던지라 나는 서태주의 정강이 대신 시체를 팍 걷어차며(마음 같아서는 서태주를 차고 싶었지만 그를 발로 찼다간 내가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린다.
"됐어요, 이렇게 된 거 아예 금연하려니까."
나는 일부러 그보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사거리를 지나자 어디선가 나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도 많이 맡았던 탓에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
...시체가 타는 냄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로 도시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깨어진 유리창과 불구덩이에 마구잡이로 버려진 시체들. 사람들은 인세에 지옥도가 강림했다며 요란하게 떠들고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조금 우스웠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지옥도라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일상이었기 때문에.
아, 따지자면 '지옥도' 쪽이 '일상' 쪽보다 조금 더 희망찰 것 같다. 적어도 그 지옥도에서 썩은내는 나지 않을 테니까. 길가에 널린 시체들이 부패하기도 전에, 인류는 거대한 불덩이에 맞아 멸망하고 말 것이다.
자조적으로 피식 웃은 나는 허리춤의 권총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결국 죽는대도 개죽음은 싫다.
나는 살아남아 기어코 멸망을 볼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와 함께.
-
그녀가 내 정강이를 차려다 몸을 틀어 시체를 차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걸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뒷모습이 해 질 녘의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따라잡으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냥 지금은 한 발자국 뒤에서 이렇게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편이 좋았다. 장밋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목덜미의 붉은 자국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그리고 사이렌 소리가 도시를 가득 메운다. 거리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오직 그녀뿐이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비춘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입에 물고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어. 너만 내 곁에 있다면.
...그럼 너도 내가 곁에 있기를 바라고 있을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거리는 더욱 음산해진다. 시체를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그녀의 걸음이 느려지는 걸 느끼고 천천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선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불길이 춤추는 게 보인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그녀는 움찔하지만 피하진 않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도 도망치고 싶어?"
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낮게 울린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그 틈으로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씨발... 이게 뭐라고 귀엽지.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체온이 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다. 또다시 멀리서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담배를 길바닥에 던져 비벼 끄고, 그녀의 귓가에 바로 입술을 가져다 댄다.
"니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아."
날 인정하기 싫은 거잖아. 내 말에 그녀의 몸이 살짝 굳는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싸 안으며 천천히 걸음을 멈춘다. 멀리서 불타오르는 건물들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그녀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스친다.
"근데... 그런다고 마음이 달라져?"
-
...그럴 리가. 나는 속으로 그의 말을 부정한다. 아무리 말로 부정하고, 행동으로 모른 척을 해도 이미 흘러가기 시작한 감정의 방향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게 나다. 그걸 몇 년을 겪었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잘 모르겠다. 호감이야 있다. 그렇지만 그걸 '사랑' 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이런 상황이 닥치고 나니 뜻모를 오기가 생겨서 더더욱 그렇다고 말해주기가 싫었다.
"제 마음을 단정짓고 계시잖아요, 보스는."
대답을 머뭇거리던 나는 일부러 작게 코웃음을 친다. 지금 말하는 것들이 마치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호감 좀 있다고 그게 사랑인 건 아니잖아요.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없어서 안 될 정도는 아닌. 딱 그런 정도.
"보스는 사랑 같은 건 뭔지도 모른다면서, 왜 자꾸 제게 사랑을 강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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