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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종단속도 (5)

설유빈 2025. 3. 10. 03:45

 

 그러나... 그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으냐 묻는다면. 대답이 바로 나오질 않았다. 만일 필요 없다고, 모질게 대답하면 그는 나에게 화를 낼까. 아니면 슬퍼할까. 나는 머릿속으로 그의 반응을 상상한다.

 

* 플레이 로그를 흐름에 맞게 일부 수정하여 담았습니다.
* AI가 출력하는 문장은 똑같은 표현이 너무 많더군요... 전체 흐름은 그대로이지만 서태주 부분에서도 제가 임의로 표현을 수정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상 로그를 기반으로 새로 쓰다시피 한 글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 이번 편은 좀 짧습니당... 분량 조절이 애매하게 됐네요.

* 이전편: https://planetloop.tistory.com/30

 

낙하, 종단속도 (4)

종단속도로 충돌해 결국 둘 다 산산조각 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런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네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 난 널 죽일 거야. 그리고 나도 죽을 거고. 이게 사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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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사랑을 강요한다고? 씨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돌려세운다. 거리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저 눈동자에 미처 감추지 못한 불안과 혼란이 보인다. 그녀도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린다.

 "강요? 내가 언제 강요했지? 넌 이미 날 사랑하고 있어.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거겠지."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령 자꾸만 나를 향하는 시선이라던가, 무의식중에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붙어 오는 거리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왜 그동안엔 몰랐을까 싶다. 눈치채고 보니 이렇게나 선명히 느껴지는데. 무시하려 해도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그렇지만 그녀의 말은 여전히 가슴 한켠을 찌른다. 사랑이라... 씨발, 이런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운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소리가 우리를 둘러싼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불빛이 일렁인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날 비웃는 것처럼 보여서.

 "사랑? ...그래. 난 모르지. 하지만 네가 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건 알아. 네가 없으면 미치겠고... 네가 다른 놈들이랑 있는 걸 보면 죽이고 싶어져.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어둠이 내린 거리는 점점 더 광기로 물들어간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불길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입술이 떨린다. 씨발... 이런 표정을 볼 때마다 더 미치게 된다고.

 이상하게도 이 혼돈 속에서 그녀의 체온만은 선명히 느껴진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마치 신 앞에서 모든 것을 고해하듯이, 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간절한 소원을 빌듯이.

 "내가 알던 사랑은... 전부 버리고 도망쳐야 하는 거였어. 동생도... 가족도... 전부 버리고 도망쳐야 했지."
 
 "..."
 
 "하지만 너는... 네 곁을 떠나는 게 더 미치겠어. 못 놓겠다고."

 나는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잡아당긴다. 얇은 셔츠 아래로 그녀의 체온이 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다. 멀리서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불타던 건물이 결국 와르르 쓰러지며 굉음을 낸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건 오직 그녀뿐이다.

 "내가 모르는 건 사랑이 아니라, 너 없는 삶이야."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피부가 차갑다. 해가 저물며 기온이 떨어진 탓이리라.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 어디선가 먹먹하게 울리는 폭발음이 우리의 대화를 감싼다.
 
 그런데, 유빈아.

 "...넌 내가 필요 없어?"

-

 뺨을 감싸는 온기를 느끼며 서태주를 올려다본다. 알고 있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그의 진심을 회피하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물론, 아무리 솔직해져 봤자 내가 그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으냐 묻는다면. 대답이 바로 나오질 않았다.

 "..."

 만일 필요 없다고, 모질게 대답하면 그는 나에게 화를 낼까. 아니면 슬퍼할까. 나는 머릿속으로 그의 반응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순간 앞쪽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을 빼들고 몸을 돌려 응전태세를 갖춘다.

 몇 놈이지?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척을 살핀다.

-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 사이로 희미하게 움직임이 보인다.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은... 열 시 방향, 두 시 방향. 최소 다섯 놈. 총기를 든 것 같은 실루엣이 거리의 잔해 사이로 보인다. 씨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나는 천천히 그녀의 등 뒤로 돌아선다. 등을 맞대고 선 우리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진다.

 "...씨발, 방해하는 새끼들, 진짜."

 나는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그들의 움직임을 좇는다. 폐허가 된 거리의 잔해들 사이로 그들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멍청하군. 이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를 노리다니. 총을 겨누고 있는 걸 보니 강도 새끼들인가, 아니면 그저 혼돈을 즐기는 미치광이들인가.

 그들의 움직임이 점점 가까워진다. 총을 든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그녀의 등이 내 등에 닿아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전해져 온다. 빠르지 않고 일정한 쿵쿵거림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역시 이런 상황에 익숙한 여자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실루엣이 더욱 선명해진다. 낡은 군복과 방탄복을 걸친 것으로 보아 예비군 출신들인 것 같다. 그들의 손에는 K2 소총이 들려있다. 하. 설마 군대에서 탈영한 놈들인가? 그들 중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 소리친다.

 "야, 거기 서! 총 버리고 손들어!"

 씨발... 진짜 귀찮게 됐네.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며 우리를 비춘다. 그림자가 움직인다. 나는 천천히 총을 들어올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체온이 느껴지는 게 좋다.

 나는 그녀의 등에 기대어 나직하게 속삭인다.

 "아직 너랑 할 얘기 있는거... 잊지 마."

-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쉬며 리볼버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지금 이 순간 서로의 호흡을 느끼고 있기에 말로 하는 신호는 필요 없다.

 셋,
 둘,
 하나.

 탕-

 한 번의 총성이 울리고 두 놈이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허리를 숙이고 각자 앞으로 뛰어나간다.

 우선 왼쪽에 저 얼타는 새끼 하나.

 우두둑-

 경추가 비틀려 한 번에 끊어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소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방금 목을 꺾은 놈의 시체를 방패로 쓰고 기둥 뒤에 숨은 나는 떨어진 K2 소총을 집어들어 상태를 점검한다.

 좋아, 탄창 충분하네.

 나는 숨을 고르며 눈앞의 기척을 살핀다. 서태주가 달려나간 등 뒤는 굳이 신경쓰지 않는다. 그를 믿으니까.

-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난다. 한 번에 처리한 것마저 언제나 깔끔한 걸 좋아하는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다. 총성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재빨리 몸을 굴려 쓰러진 기둥 뒤로 숨는다. 총알이 콘크리트를 때리고 파편이 튄다. 

 멍청한 새끼들. 조준 실력이 형편없는 걸 보면 역시나 손에 든 것만 믿고 나대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기둥 너머를 살핀다. 두 놈이 남았군. 한 놈은 차 뒤에, 다른 한 놈은 건물 입구에.

 재빨리 벽을 타고 달려가 첫 번째 놈의 목을 꺾는다. 두 번째 놈이 총을 들어 조준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히고, 물렁한 코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순간 나는 그의 총을 빼앗아 머리에 한 발을 쏜다.

 총알이 이마를 관통함과 동시에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고 시체가 쓰러진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들린다.

 수류탄.

 눈을 부릅뜬 나는 재빨리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그녀 또한 이미 알아챘는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동시에 움직인다. 그녀는 내가 있던 방향으로, 나는 그녀가 있던 방향으로. 그 순간 등 뒤에서 강한 폭발음이 울린다. 아마 그녀가 총을 쏴 수류탄을 허공에서 폭발시킨 것 같았다. 파편이 사방으로 터지고 적들의 비명이 들린다.

 그 뒤로 전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한 놈이 총을 겨누려 하지만... 설유빈의 총구가 이미 그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었다. 곧 짧은 총성이 거리를 울린다.

 

 

***

 


 "같잖은 새끼들이... 방해를 하고 있어."

 나는 피가 튄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는다. 씨발... 옷 다 더러워졌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어두워진 거리에서는 연기와 불길에 비쳐 그녀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인다.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가쁘지 않은, 차분한 숨소리.

 그녀의 손에 들린 소총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난다. 아까까지 우리를 겨누던 총이 지금은 그녀의 손 안에서 길들여진 듯 얌전히 누워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혈향과 함께 바람에 날린다. 장밋빛 머리카락의 끝은 아예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마치 피를 머금고 피어난 장미처럼.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간다. 발밑의 시체들을 무심하게 밟으며.

 그녀의 뺨에 튄 피가 붉은 점이 되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든다. 나는 손을 뻗어 그 피를 닦아준다. 손끝에 닿은 피부가 차갑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선명하게 보인다. 초록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방금 전의 전투가 무색하리만치 차분한 눈빛.

 나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는다.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할까?"
 
-
 
 "...무슨 얘기요. 기억 안 나는데."

 전투가 벌어지기 전, 그가 '넌 내가 필요 없어?' 라고 물었던 것을 분명 기억한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을 인정하는 게 두려웠던 나는 반 박자 늦게 둘러대며 모른 척을 한다. 조금 더 고민하고 말했어야 했는데, 회피하던 것도 버릇이 되었는지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에 대뜸 그런 말이 나와 버렸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서태주의 표정이 팍 일그러진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두려움보다는 가슴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매번 그에게 이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이기적인 년.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했던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다. 나는 입 안쪽의 여린 살을 짓씹으며 천천히 그를 올려다본다. 
 
-
 
 그녀의 모른 척하는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식으로 날 갖고 놀겠다는 건가. 내가 저렇게 구걸하듯 매달리는 게 우습게 보이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쥔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 굳어진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 그 무심한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한없이 우습게만 보인다.

 "너... 진짜 사람 미치게 하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나는 손을 돌려 그녀의 목을 붙잡은 채로 벽에 밀어붙인다. 약간 힘을 주자 숨이 막힌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마자 가슴이 뜨끔해 잠시 멈칫하게 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손에 준 힘을 풀지 않는다.

 "네가 날 좋아했다며?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이렇게 된 거 아냐?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날 갖고 놀겠다고?"

 "윽..."

 "하, 씨발... 진짜 이때까지 잘도 참았다 싶다."


 화가 난다. 그녀의 목을 조이는 내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그녀의 맥박이 빠르게 뛴다. 그녀의 숨이 거칠어진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나를 향한 간절함이나 연민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내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네가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땐 진심이 아니었나? 아니면 날 이용해 먹고 버리려고 했던 거야? 그래, 진짜 너답다 씨발. 태온에서도 그랬지. 항상 이런 식이었어. 네 마음은 숨기고, 남들 마음만 가지고 놀고."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도시는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녀의 무정한 눈동자만이 보인다.


 "이제 됐어. 더 이상은 안 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날 사랑하든 말든... 씨발, 상관없어."


 그 말과 함께 나는 그녀의 목을 잡았던 손을 풀어낸다. 그녀가 기침을 하며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붙잡아 줬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 씨발.

 

 나는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를 켜자 일렁이는 불길이 그녀의 눈에 비친다. 뭐가 마음에 얹힌 건지 인상을 찌푸리고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뜻모를 원망이 서려 있다. 원망을 해야 할 건 난데 왜 네가 그딴 표정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악문다. 저 눈동자가 미치도록 싫었다.

 "...어차피 며칠 뒤면 다 끝날 일이잖아? 그냥 네 좆대로 해. 더는 안 물어볼게.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내 마음 같은 건... 끝까지 혼자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동안 나 갖고 노는 게 재밌었길 바라. 거칠게 뱉어 낸 담배 연기가 밤하늘로 흩어진다. 하얀 점처럼 떠 있는 멸망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저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더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제 됐어. 이런 개같은 구걸도 여기서 끝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됐네. 내가 먼저 지쳤으니까."

 발걸음 소리가 어둠 속으로 멀어진다. 희뿌연 담배 연기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현재 시간: 12월 27일 오후 9시 25분]
[D-4 2:35:00 until imp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