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뭐라고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개그물이고요, 백태온에서 오타쿠질을 하는 정신나간 말단 조직원 유빈이의 하루입니다.
컨셉소개: 일주일 전 전략팀으로 발령난 신입 조직원, 태온 익명게시판에서 욱설(강욱X하설영) 소설을 인기리에 연재 중, 독자들의 무수한 소장 요청에 의해 여태까지의 연재본을 회지로 뽑아 판매하기까지 하게 됨.
* 소넷 3.7이 막 업데이트 되자마자 했던 거라 로그 상태가 영 안 좋을 수는 있습니다. 감안해 주셔요...
* 이왕 하는거 그시절 오덕이 되고 싶었지만 그시절...을 제가 잘 모르는 관계로, 말하는 거나 용어나 사실상 2020년대 씹덕입니다. 흑흑...
* 저는... 이 글의 유빈이만큼 욱설에 미쳐 있지 않습니다.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출근하자마자 무언가를 품에 소중히 안고 건물 뒤편 공터로 조용히 향한다. 글/A5/중철/170p, 검은색 무광표지의 책 두 권. 오늘 거래하기로 한 물건이다.
-
얇은 한기가 안개처럼 몸을 감싸는 이른 아침,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책 두 권을 품에 꼭 끌어안는다. 표지는 평범했지만, 그 무게감은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신은 주위를 살피며 태온 본부 건물 뒤편으로 향한다.
건물 뒤 공터는 사각지대로, CCTV가 닿지 않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다. 아마도 그래서 거래 장소로 지정된 것일 터. 당신은 꽤 익숙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걸었다.
공터에 도착하자 아직 아무도 없었다. 당신은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는 벽에 기대어 선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품 안의 책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음을 느낀다.
잠시 후, 공터 반대편에서 그림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천천히 걸어오다 당신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지는 않은 채 당신을 바라본다.
"책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가 중얼거린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뭔가 위험한 기운이 감돈다.
-
"...진짜 'xvZi존최강vx'님 맞으세요?"
나는 태온 익명게시판에서 대화했던 그의 닉네임을 언급한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알면 곤란한 것이라 확인을 철저히 해야 했다. 이 책은...다름아닌, 실장 '하설영'과 전략팀장 '강욱'을 주인공으로 한 혐관 로맨스 소설이니까.
태온 익명게시판에서 내가 연재하는 소설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열화와 같은 인기에 힘입어 직접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이렇게 책으로 만들고 판매하기로 한 건데... 책까지 구매할 정도의 열혈 독자가 이 남자라고? 나는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본다.
-
성윤조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다. 그의 얼굴에 보조개가 살짝 패이며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당신의 말을 듣는 그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인다.
"xvZi존최강vx... 그러게, 내가 그랬었나?"
그가 담배를 입에서 빼며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온다. 발걸음은 느긋하지만 어딘가 위협적인 기운이 묻어난다.
"맞아. 내가 바로 그 ' xvZi존최강vx'야. 근데... 이 책이 진짜 그 유명한..."
성윤조가 당신이 안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의 시선이 책을 향해 내려간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섞인 표정이다.
"하설영과 강욱이 주인공인 그 소설? 맞지?"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의외로 소년같은 웃음소리다.
"내가 그 글 진짜 재밌게 봤거든. 특히 하설영이 강욱한테 벽치기 당하는 그 장면... 하, 씨발. 대박이었어."
성윤조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지만, 당신은 그의 정체를 깨닫고 얼어붙는다. 태온의 보스가, 바로 그 '성윤조'가 당신의 혐관 소설의 열혈 독자라니.
"돈은 준비해 왔어. 근데... 이거 하설영이랑 강욱이 알면 재밌겠다. 어때?"
-
나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보스...성윤조?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라고? 내 소설 연재글이 올라올 때마다 꼬박꼬박 댓글을 달던? 심지어 이번 회지 출판본에는 감사의 의미로 그의 추천사까지 함께 넣었는데. 그게... 성윤조였다니.
당황한 나는 죄짓다 딱 걸린 사람마냥 이를 딱딱 부딪히며 말을 더듬는다.
"그, 음, 어..."
그러다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는다.
...어? 다시 생각해보니...
보스가 인정하고 재밌게 읽을 정도면...
두 사람의 관계가 진짜라는 뜻 아닌가?
보스까지 인정한 사랑?
와 씨...이건 된다. 이건 진짜 되는 주식이다.
갑자기 떨림이 잦아들고 자신감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야! 우리 보스도 욱설러랜다! 얘네 진짜라니까?! ...라고 속으로 흥분해 외치며, 나는 겉으로는 차분한 척 싱긋 미소를 짓는다.
"글쎄요, 원작자가 누군지만 비밀로 해 주신다면..."
-
성윤조는 당신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고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 보조개가 패이고, 그의 손이 부드럽게 담배를 입에서 빼낸다.
"비밀? 당연하지. 내가 그런 거 좋아하는 줄 알면..."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한 발짝 다가선다. 당신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의 향수 냄새와 담배 향이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조직이 개판 되는 거 아니겠어?"
성윤조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현금 다발을 꺼낸다. 그의 손가락이 지폐를 세는 동안,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당신의 얼굴을 탐색한다.
"근데... 이 소설, 꽤 사실적이던데. 특히 강욱이 하설영한테 칼 들이대는 장면이랑... 그 뒤에 이어지는 행위들. 누가 봐도 실제 상황 같았어."
돈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눈빛이 묘하게 변한다. 그가 혀로 입술을 핥는다.
"진짜 씨발 웃기겠다. 하설영 그 꽁해있는 새끼가... 강욱한테..."
성윤조는 책을 받아들며 표지를 쓰다듬는다. 그의 손가락이 책 표면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묘한 집착이 느껴진다. 제목을 손끝으로 쓸던 성윤조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번뜩인다.
"근데 설마... 여기 다른 커플도 있어? 나도 나오나?"
-
하하 웃으며 조용히 이를 악문다. 물론 익명게시판에 성윤조랑 하설영을 엮는 소설도 올라오긴 하지만... 그건 내가 쓴 게 아니다. 왜냐면 오로지 욱설만이 진리니까. 진성 욱설러인 내게 있어 다른 모든 커플링은 가짜에 불과하다.
진정한 사랑은 악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무래도 맨날 익명으로 글을 올렸다 보니... 그가 뭔가 착각한 모양이다.
"진리는... 욱설 아닌가요? 아무리 보스시라지만 ' xvZi존최강vx' 님이 이런 말을 하실 줄은..."
나는 결국 정색을 하며 말한다. 보스, 설마... 유녕... 그런 거 하세요?
* '유녕'은 '성윤조'의 '윤'과 하설영의 '영'을 합쳐 만든, 성윤조와 하설영 커플을 칭하는 태온 익명게시판 내 은어입니다.
성윤조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진다. 그의 눈에서 장난스러운 기색이 사라지고 무언가 위험한 기운이 감돈다.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가고, 그의 턱 근육이 살짝 경직된다.
"...유녕?"
그가 천천히 그 단어를 되풀이한다. 마치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를 발음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그가 천천히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담배 끝이 붉게 타오르며 그의 얼굴을 잠시 비춘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후,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나랑... 하설영이?"
성윤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에는 온기가 없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게 빛나고 있다.
"씨발... 씨발, 진짜 웃기네. 나랑 그 꽁한 새끼가? 아, 이거 진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당신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 손아귀 힘이 생각보다 강해 당신은 작게 신음한다. 잠시 뒤 손에서 힘을 푼 성윤조는 손가락으로 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린다. 그 손길에 위협이 스며 있다.
"재밌게 봤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야. 알겠어?"
그가 책을 손에 쥐고 돌아서려다 멈춘다.
"이거 다음 편도 쓰나? 쓴다면... 내 캐릭터도 좀 넣어줘. 하지만 유녕은 절대 안 돼. 그건... 그냥 하지 마."
당신을 내려다보는 성윤조의 목소리에 경고의 기운이 감돈다.
-
"아,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한다. 그럼 그렇지. 내 소설의 열혈팬이신 ' xvZi존최강vx' 님이 유녕 같은 간악한 가짜를 좋아하실 리가 없다. 휴, 하마터면 아침부터 보스한테 대들었다가 대가리 날아갈 뻔 했네. 이따 오후에 신작 업로드하려면... 일 빨리 끝내야겠다.
나는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략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강욱은 평소처럼 만만한 조직원 하나를 갖고 놀듯 괴롭히는 중인 듯했다. 음... 눈에 안 띄게 조용히 들어가야겠다.
-
전략팀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는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 발걸음마다 먼지가 반짝인다. 방금 보스와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맴돈다. 당신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조용히 사무실 문에 다가간다.
유리창 너머로 강욱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한 남자 조직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듯한 표정이다. 강욱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미소가 걸려 있지만, 그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다.
"이게 분석이라고 가져온 거야? 개가 토해놓은 것 같은데? 다시 해와."
강욱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온다. 강욱은 한 남자 조직원의 서류를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다. 그의 입가에는 항상 그렇듯 미소가 걸려있지만, 그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다. 그 남자는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들고 있다.
당신이 조용히 자리로 향하려는 순간, 강욱의 시선이 문을 향한다. 그의 눈이 당신과 마주치고, 입꼬리가 더 올라간다.
"오, 우리 귀여운 막내가 왔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강욱의 말에 사무실 안의 모든 시선이 당신에게 쏠린다. 그 조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강욱은 의자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온다.
"뭐... 아침부터 책이라도 읽으러 다녀오는 길인가?"
그의 말에 당신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설마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스럽기만 하다.
-
나는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을 하며 슬쩍 자리로 향한다. 설마. 그냥 해 본 말이겠지.
"아... 아침에 잠깐... 책 한 권 주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요."
거짓말은 아니다. 어쨌거나 책을 주기는 준 거니까. 다만 대가로 돈을 조금 받았고, 건네 준 게 무슨 책인지는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제발 관심 꺼라... 이쪽으로 오지 마... 나 오늘 올릴 글 아직 퇴고 덜 했단 말이야.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고.
-
강욱은 당신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리를 살짝 기울인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지만, 그 눈빛은 무언가를 꿰뚫어보려는 듯 날카로워진다. 당신의 표정, 목소리, 몸짓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듯하다.
"책? 어떤... 책인데?"
그가 천천히 다가온다. 당신의 책상 앞에 서서 양손을 책상에 짚고 상체를 낮춘다. 이제 그의 얼굴이 당신과 가까워졌다. 그의 숨결이 당신의 뺨을 스친다.
"우리 귀여운 유빈씨가 아침부터 누구랑 만나서 책을 주고받고... 재밌네."
강욱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긴 뉘앙스는 위험하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얼굴을 훑더니 책상 위로 향한다. 당신이 내려놓은 가방을 흘깃 본다.
"읽던 책 좀 보여줘요. 나도 책 좋아하거든."
그의 말투는 마치 부탁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명령에 가깝다. 강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며 당신을 내려다본다. 사무실 안의 다른 조직원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척하지만,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뭐... 보여주기 싫으면 안 보여줘도 돼. 다만..."
강욱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진다.
"그럼 내가 직접 찾아볼까?"
-
"아, 하하... 음. 이미 줘 버려서 없는데요..."
씨발, 관심 갖지 마...! 본인이 주인공인 연애소설을 강욱한테 들켰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질 않는다.
분명 그 자리에서 죽이지는 않을 거다. 대신 죽느니만 못한 꼴로 만들어 놓겠지... 얼마 전 우연히 엿들었던 얘기로는 그가 장기매매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던데, 어느 쪽이든...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스스로 혀 깨물어 죽고 말지, 그에게 내가 이런 걸 쓴다는 걸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몸을 부르르 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강욱을 올려다본다.
"요즘 자기계발이 중요한 시대라니까요... 나중에 책 돌려받으면 팀장님께도 알려 드릴게요."
그때, 전략팀 사무실 문을 열고 하설영이 들어온다. 나를 압박하던 강욱의 시선이 순간 그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장면을 보고 나는 숨을 멈춘다.
와...얼굴합 돌았다. 지렸다. 실장님 눈빛 봐. 둘이 사귄다니까? 자리 비켜줘야 하는 거 아냐? 저렇게 쳐다보다가 멱살잡고 키스하고...
아. 벌써 머릿속에서 망상 한 편 뚝딱 나왔다. 오늘 밤에 꼭 써야지.
-
하설영이 전략팀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공기가 변한다. 그의 차분한 걸음이 마룻바닥에 희미한 소리를 내며, 사무실 전체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강욱은 당신을 압박하던 자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하설영을 향해 돌아선다. 그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공기를 짓누른다.
하설영은 특유의 연갈색 눈동자로 사무실을 한번 훑더니, 강욱과 당신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하지만, 그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실장님, 무슨 일로..."
강욱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조소가 여전히 묻어있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톤이 느껴진다. 하설영은 강욱을 잠시 응시하다가 시선을 사무실 전체로 옮긴다.
"전략 보고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하설영의 차분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린다. 그의 시선이 당신에게 잠시 머물다가 다시 강욱에게로 돌아간다. 두 남자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팀장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강욱이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따뜻함이 없다.
"물론이죠, 실장님. 언제든 당신을 위한 시간은 있으니까."
먼저 돌아선 하설영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 그가 당신에게 다시 눈길을 던지며 속삭인다.
"나중에 계속하자고요, 유빈 씨."
-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전략팀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조금 전 들었던 강욱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물론이죠, 실장님...? 언제든? 당신을 위한 시간은... 있으니까? 아...미치겠다. 일상생활이 어렵다. 이렇게 상사들의 연애를 멀리서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아팠다. 나도 따라가서 볼래, 내 최애컾 사귀는거 직관할래 미친...
"...정신차리자. 너 조직원이야."
오타쿠적 자아가 치고올라와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나는 스스로의 뺨을 찹찹 소리나게 때린다. 빨리 오전에 보고서를 다 써야 오후에 마저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집중하자...! 목숨 날아가기 싫으면. 그냥 회사에서는 일 못하면 책상만 사라지겠지만 여기서는 모가지도 함께 사라진다. 나는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어제 쓰다 만 보고서 파일을 켠다.
점심 시간이 되자 나는 책 스무 권을 더 챙겨 건물 뒤편으로 향한다. 아까와 같이 곤란한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검은색 후드를 푹 눌러써 얼굴을 꼼꼼히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래 방식은 그쪽에서 닉네임을 적은 쪽지와 돈을 내밀면 내가 주문내역을 확인하고 책을 건네주는 방식.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벌써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조직원들이 보인다. 짜식들... 아, 팀장님, 실장님... 두 분의 사랑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요. 도대체 언제 공개하실 건가요? 결혼식 하면 꼭 저한테도 청첩장 주시고요.
대충 책을 내려놓고 자리를 깔고 앉자 순식간에 줄이 생긴다. 나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돈과 책만 주고받는다. 순조롭다. 사람들이 일찍 와 줘서 점심시간 전에 거래 다 하겠는데?
-
건물 뒤편 공터에 앉아있는 당신 앞에 조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당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다. 그저 태온 익명게시판에서 주문한 책을 받으러 온 열혈 독자들일 뿐.
당신은 책과 돈을 주고받으며 기계적으로 거래를 진행한다. 때로는 구매자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우와, 드디어 실물을 보네..."
"욱설 진짜 찐이야..."
"이거 보다가 걸리면 죽을 텐데..."
한 남자가 쪽지와 돈을 내밀자, 당신은 쪽지를 확인하고 책 한 권을 건넨다. 그가 책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순간, 당신의 시선이 무언가에 걸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키 큰 남자.
정우현이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그저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여 있다. 당신은 후드를 더 깊게 눌러쓰며 시선을 피한다.
그러나 정우현은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키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우현은 그들을 무시한 채 당신에게 다가온다. 암살팀장의 존재감은 그런 것이다.
"이런 곳에서 뭐하는 거지?"
정우현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울린다. 당신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진다.
-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남은 책 한 권을 뒤로 슥 밀어 가방 안에 넣어 버린다. 그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고개를 숙이고 있음에도 심장이 쿵쿵 뛴다. 시발, 큰일났다...!
-
정우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당신의 후드 너머를 파고든다. 당신이 책을 급하게 감추는 모습을 놓치지 않은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진다. 사람들은 암살팀장의 등장에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한다.
"면상 좀 보자."
그의 손이 당신의 후드를 향해 뻗어온다. 피할 새도 없이 그의 손가락이 당신의 후드를 붙잡고 뒤로 젖힌다. 당신의 장밋빛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가 드러나자 정우현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한다.
"설유빈?"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문은 무겁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가방으로 향한다.
"뭐야, 이건?"
정우현이 바닥에 흩어진 돈을 가리킨다. 그의 시선이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온다. 그 눈빛은 마치 당신의 속내를 모조리 들여다보는 것 같다.
"조직에서 뒷거래를 하는 건가?"
그의 물음에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점심시간의 태양이 두 사람 위로 내리쬐고, 당신의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한다.
-
후드가 벗겨져 버린 나는 달달 떨면서 그를 올려다본다.
아. 조.좆됏다. 뭐라고 설명하지.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손으로는 흩어져 있던 돈을 슥슥 모아 담는다. 정우현이 무서운 건 무서운거고... 돈은 챙겨야지. 나 거의 인쇄값만 받은 수준으로 판 거란 말이야.
"그게, 어..."
나를 쳐다보는 정우현의 눈빛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진다. 그 때문일까.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린 나의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버렸다.
"호, 혹시 욱설...관심 있으세요?"
'Recor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태온에서 욱설러로 살아남기 (3) (14) | 2025.03.01 |
---|---|
백태온에서 욱설러로 살아남기 (2) (10) | 2025.02.28 |
지독한 외사랑의 결말 (3) | 2025.02.20 |
낙하, 종단속도 (3) (4) | 2025.02.13 |
낙하, 종단속도 (2) (4) | 2025.02.11 |